암자기행 ㅣ 해남 달마산 도솔암

봄[見]에 속박당하지 않는 봄[觀]

해남 달마산 도솔암



  해남 달마산 남쪽 끝자락의 서쪽 기슭에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습니다. 달마산 등성마루에서 살짝 내려앉은 바위벼랑에 가부좌를 튼 모습입니다. 여느 절집의 산신각만 한 크기입니다만, 그 입지는 명안(明眼) 납자의 ‘눈’입니다. 바다의 숨구멍인 양 하늘을 마시고 있는 진도 일대의 섬들이 그윽이 다가오는 곳입니다. 이곳을 최초로 찾아낸 사람은 한국 화엄종의 시조 의상 스님입니다. 그 내력이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옵니다. 

  “(달마산 등성마루 위로) 흰 돌이 우뚝 솟았는데 당(幢)과 같고 벽과도 같다.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린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쌓인 눈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그 땅의 끝부분에 도솔암이 있는데, 암자가 앉은 곳의 빼어난 형세는 따를 만한 짝이 없다. 화엄조사 상공(湘公)이 터를 잡고 지었다. 암자 북쪽에는 서굴(西窟)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義照和尙)이 머물러 살면서 낙일관(落日觀)을 닦았다.”

  의상 스님이 도솔암을 지었고 이어서 의조 스님이 수행을 한 곳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조 스님은 미황사의 창건주이기도 합니다. 달마산과 도솔암 그리고 미황사, 이 셋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한 몸의 다른 몸짓이라고 봐야겠지요. 


  의조 스님은 달마산에서 면벽 대신 ‘낙일관’을 닦았다고 합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을 수행으로 삼았다는 것이지요. 낙일관은 일상관(日想觀) 또는 일몰관(日沒觀)이라고도 하는데, 『관무량수경』의 16가지 관상법 가운데 첫 번째 관법입니다. 아들 아사세 태자에 의해 감옥에 갇힌 위제희 왕비가 간절히 부처님을 뵙고자 하니,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위제희 부인에게 나타나셔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법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일상관의 핵심적인 대목만 옮겨보겠습니다. 

  “곧 지려는 해를 마치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처럼 여기고 바라보세요. 해를 바라보고 난 후에도,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영상을 한결같이 보도록 하세요.”

  감각적인 봄[見]으로써 감각을 소멸시켜 마음의 산란함이 그치면[止] 바로 그곳에 극락이 펼쳐진다는 말씀이겠지요. 봄[見]에 속박당하지 않는 봄[觀]. 관법 수행의 요체를 이보다 쉽고 자상하게 일러줄 수는 없을 겁니다. 

  달마산 도솔암으로 가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미황사에서 ‘달마고도(4코스)’를 따라가면 됩니다. 더 쉬운 방법은 도솔봉 조금 아래까지 나 있는 찻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쉽게 가는 것을 께름칙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가든 중요한 건 ‘마음속에 북처럼 걸어둘 지는 해’를 만나는 것이니까요. 

  일기예보라는 것이 일몰의 시간을 지워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눈의 감각 기능부터 되살리는 게 우선이겠지요. 하루에 한 번, 해 지는 서쪽을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윤제학, 사진|신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