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ㅣ 붉은 노을

 붉은 노을


김태겸
수필가


  늦은 오후, 별일 없으면 집 근처 한강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두 시간 정도 걷다 보면 몸은 가벼운 땀에 젖고 머리는 맑아진다.

  돌아오는 길, 나는 한강 하류가 잘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해가 지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다. 강물은 태양의 마지막 빛이 아쉬운 듯 눈이 부시도록 반짝인다. 노을은 점점 붉게 물들어 해지기 직전 절정을 이룬다. 그 붉은빛의 아름다움이란…. 내가 저녁 무렵 산책하는 것은 운동보다는 노을을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름답게 살다간 한 여인이 있었다. 몇 년 전, 수필 쓰기 강좌에서 그녀를 만났다. 아담한 체구, 짧게 파마한 머리, 커다란 눈망울, 창백한 혈색.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은 눈빛을 가진 여인이었다. 무채색 옷을 즐겨 입고 다니며 강의 시간 내내 말 한마디 없었다. 교수가 수강생이 제출한 수필을 날카롭게 비평할 때면 마치 자기에게 한 말이라도 들은 양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몇 개월 지나도록 수필 한 편 제출하지 않았다. 글솜씨가 궁금해져서 말을 걸었다.
“이제 한 편쯤 낼 때가 된 것 아니에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내 말이 그녀를 자극했던 것일까? 그녀가 첫 수필을 제출했다. 호기심이 컸던 터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문법도 엉망이고 문장도 기본을 갖추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휘하고서야 겨우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묵을 만들어 먹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 이런 작문 실력으로 문학에 도전하려는지, 내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음 주, 합평 시간에 어떻게 평할까 고심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테고 에둘러 말하면 도움이 안 될 텐데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녀의 사슴 같은 눈망울과 마주친 순간 나는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첫 작품을 온갖 수사를 동원해 난도질한 후 그녀의 태도를 살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강의실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고 걱정하면서.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의 평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깨알 같은 글씨로 그녀의 수필을 수정한 합평지를 받아들고는 퇴고에 큰 도움이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보았다. 어떠한 비판도 겸허히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후, 그녀는 정말 정열적으로 수필을 썼다. 매주 한 편씩 수업 시간마다 빠짐없이 제출했다. 이상하게도 그녀 작품을 대하면 사명감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내 짧은 문학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녀가 빨리 근사한 수필을 써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녀의 글솜씨는 일취월장했다. 특히 일상적 소재에서 주제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뛰어났다. 이제는 합평 시간에 글을 비판하기보다는 잘된 점을 칭찬하면서 어떻게 하면 감동적으로 마무리할 것인가를 토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등단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럴 즈음, 그녀가 강원도 월정사로 단기 출가수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내심 그녀가 마음공부까지 하고 나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때가 되어도 그녀는 수업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발신처가 생소한 문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열어보니 그녀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아내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4년 전부터 암과 싸우고….”
그녀는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서 수행을 떠났던 것이었다. 큰 종소리가 귀를 울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 신세를 졌던 내게 자신의 죽음을 알려달라고. 

  그녀와 두 해 남짓 수필 공부를 함께 하면서도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워낙 둔감한 탓도 있었겠지만 다른 문우들도 몰랐던 것을 보면 그녀의 평상심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며칠 후, 수필을 가르치던 교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에게 수필을 배우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죽기 전에 책 한 권을 내고 싶어요.”
그녀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자신의 삶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교수님과 상의해서 그녀의 수필집을 펴내기로 했다. 망설이던 그녀 남편을 어렵사리 설득하고 원고 정리를 맡았다. 그녀의 유고를 정리하면서 나는 글 속에 얼룩져 있는 수많은 눈물 자국을 확인하고는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망한 지 세 달 만에 그녀의 수필집 『두고 간 편지』가 세상에 나왔다. 교수님과 문우들, 그리고 그녀 유족이 남양주 양지바른 곳에 세워진 추모관에 모였다. 그녀의 유고 수필집을 헌정하는 행사를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조그만 유리창 안의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하얀 자기로 만든 유골함이 실내로 스며든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문우를 대표해서 추도사를 읽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의연하려 했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북받치는 슬픔이 나를 사로잡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추도사를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헌정식을 마치고 나오는 길가에 시월의 코스모스가 처연하게 피어 있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황혼을 장식하는 그 붉은 노을이 그날따라 유난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마지막 열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 생전에 질책보다 한마디 더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지 못했던 것이 가슴을 쳤다. 



김태겸 『문학의 강』에 수필로 등단해 월간 『불교문화』와 격월간 『문학 수(秀)』 편집위원을 비롯해 서초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및 편집위원장, 국제PEN한국본부, 일현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낭만가(街)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