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ㅣ 다시 불교를 보다 (5)

 다시 불교를 보다 (5) 

어떤 삶을 살 것인가 ①


이수정

창원대학교 철학과 교수・대학원장




  최근 불교에 대한 책을 내면서 『초전법륜경』과 『반야심경』을 좀 특별히 강조했다. 우리 귀에 상대적으로 자주 들려 유명한 『법화경』, 『화엄경』, 『아함경』, 『금강경』 … 등등이 모두 불설 경전이니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굳이 저 두 경전을 특별히 조명한 것은 거기에 불교의 핵심이 간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이 분명히 있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나는 워낙에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

  그 심플함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불교의 핵심은 ‘도(度)’라는 글자 하나에 압축되어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내용은 바로 그것이었다. ‘도(건너기)’란 ‘고’에서 ‘멸’로라는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괴로움에서 고요함으로’, 그게 불교의 원점이었다. 그 고의 원인이 ‘집’이고 그 멸의 방법이 ‘도(=8정도)’이니 ‘도’라는 한 글자 속에 고집멸도 네 글자가 함께 있는 셈이다. 그게 이른바 4성제였다. 그게 부처가 득도 후 맨 처음 설한 초전법륜의 핵심 내용이었다. 부처는 양 극단이 아닌 중도로서의 8정도를 좀 특별히 강조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고집멸도라는 맥락에서 들어야 한다. 

  그런데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이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3법인 4성제 8정도 12연기, 아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문제다. 너무 익숙하다 보니 정작 그 내용이 말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실천은 더욱 멀어진다. 서양 철학에서는 이런 것을 ‘소외(Entäußerung)’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본질을 되찾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다시 보기’의 배경인 것이다. 

  헛된 것에 대한, 특히 나라는 것에 대한 갈애와 집착, 그로 인한 고통-번뇌, 그것을 내려놓기, 마음 비우기, 그것을 위한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려-정념-정정, 불자는 끊임없이 이것을 다시 보고 되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이게 쉬운 일이겠는가. 도일체고액을 하려면 조견오온개공을 해야 한다. 저 관자재보살처럼. 우선 그것부터 쉽지가 않다. 모든 괴로움을 건너기 위해 오온(색수상행식)이 다 헛됨을 비추어본다? 누가 그것을 쉽게 할 수 있는가. 오온의 정체는 사실 욕망의 덩어리다. 온 세상이 온통 그것으로 돌아가는데 누가 그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누가 내 자리를 빼앗아도 평생의 원수로 여기고 내 돈 몇 만 원을 내는 데도 부들부들 떤다. 죽기 전에 부귀공명이 헛됨(空)을 아는 것은 하이데거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오직 ‘드문 자들(Die Seltenen, Die Wenigen)’에게만 가능할 것이다.

  그 드문 자들 중의 한 사람을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불교계에서는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유학 시절에 만났다. 나보다 연상이었지만 학교에는 후배로 들어왔다. 그녀의 인상은 좀 강렬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성격이 편안한 느낌을 줬다. 누나 같은 느낌? 그녀나 나나 참 열심히 공부했다. 학문적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다. 각종 평가에서 이른바 스카이 대학보다 상위에 랭크되는 그 명문 대학에서 우리는 마침내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귀국해서 대학교수로 자리 잡았다. 나는 운이 모자라 지방에 내려왔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인 서울(?)에 성공했다. 평생의 경제적 안정과 명예를 확보한 것이다. 연구도 열심히 해 업적도 착실히 쌓아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이 바빠 귀국한 후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녀의 세속적 행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언론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접했다. 서울의 대학교수직을 내던지고 남해의 한 외딴 섬으로 내려가 수도원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한동안 내 머리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개가 숙여졌다. 누가 그런 일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나라면? 나도 아마 그렇게는 못 할 것이다. 갈애와 집착을 버리는 일이다.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지위와 수입을 초개처럼 버린다는 것이다. 그건 그 헛됨을 깨달았다는 증거다. 유학 시절엔 잘 몰랐지만 기사에 의하면 그녀의 삶에도 ‘고’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알기-내려놓기-비우기-떠나기는 기본적으로 부처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녀는 그저 남해안의 한 외딴 섬으로 간 것이 아니라 2천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부처의 앞으로, 저 녹야원으로, 콘단냐의 옆자리로 떠나간 것이다. 

  그런 것이 불교를 다시 보는 일이다. 그녀는 아마 연하의 유학 선배인 나를 기억도 못하겠지만, 나는 그녀를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녀가 부디 정각을 이루어 성불하시기를 빌며 합장한다. 그녀의 이니셜은 J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