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 21세기 보살계 ㅣ 불교 계율이란 무엇인가? - 대승보살계를 중심으로

불교 계율이란 무엇인가? - 대승보살계를 중심으로



법장 스님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동국대 경주캠퍼스 겸임교수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이란 화두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모든 일상에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침투해오며 사회의 모습이 크게 변화되어,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위드 코로나’ 등의 사회현상을 걱정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이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생각하던 21세기로 접어들며 모든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음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이나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조차도 이제는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모습에만 치우쳐 있고,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사유하지 않고 있다. 어느 시대이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행복’으로 귀결된다. 지금 우리가 적응하려는 새로운 시대와 환경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열망에 의한 것들이다. 다만, 최근의 변화들은 과거와 달리 우리들의 예측을 벗어나 어느 순간에 나타나 우리와 공존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 순간 그러한 변화를 좇는 것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럼 과연 우리가 그토록 얻고 싶어 하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는 표현으로 대답한다. ‘깨닫는다’라는 표현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삶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무언가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에 대해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때 알게 된 그 ‘깨달음’이 바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사람은 살아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고 추구하려 한다. 돈, 명예, 사랑, 건강 등 저마다의 바람을 추구하고 얻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하고 좌절하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불교에서는 무상, 고, 무아의 ‘삼법인’을 통해 설명하고 그것들을 초월한 ‘열반’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어떤 것이든 영원히 나의 것으로 존재할 수 없고, 그것들을 추구하는 나 자신도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괴로움(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나의 것을 추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과연 그것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까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남들이 그렇게 해서,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이제 그걸 다시금 깨달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은 바로 ‘보살’이다.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이란 뜻으로,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살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 대답으로 불교에서는 계, 정, 혜의 ‘삼학’을 말한다. 바로 불교인이 되기 위한 계를 받고, 그것을 토대로 선정, 집중된 삶을 살고, 그로 인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쉬워 보이지만 이 말을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다시 ‘보살계’라는 규율을 정해서 보살다운 삶을 살기 위한 지침서를 마련하고 있다. 

  보살계를 말하는 경전에는 『범망경』, 「유가사지론」 등이 있으나,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계율’이란 계와 율이 합쳐져 만들어진 표현이다. ‘율’은 경, 율, 론의 삼장에서 율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님들이 출가할 때 받는 구족계를 율이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율의 내용은 바꿀 수 없다는 약속이 되어 있어 2,6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율장만은 최대한 원형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계’는 살생계, 망어계와 같은 조항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살계’를 지칭해 ‘계’라고 한다. 이 보살계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 이유는 바로 불교가 시대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불교적 삶의 지침이 되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살계의 정신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우리 모두는 서로 의지처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이라는 연기법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만의 행복과 그것의 추구가 참된 삶의 모습이라 착각하며 고립된 삶을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들과 부딪치고 상처 주며, 때로는 스스로에게 그 가시를 되돌려 찌르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의 무지를 바르게 알려주고 다시금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선지식이 바로 보살인 것이다. 

  계, 정, 혜 삼학의 가르침을 보살의 삶으로 나타낸 것을 ‘삼취정계’라고 한다. 세 가지 지녀야 할 청정한 계라는 의미로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를 말한다. 먼저 섭율의계는 바른 계행, 즉 보살의 모습이다. 최근 불교 윤리라고 해서 여러 저술과 학문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서양 윤리학을 토대로 불교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종교이며 철학 사상으로 그 가르침에는 자체 규율인 계와 율이 존재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나 현상 등을 불교 윤리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선 이러한 계율을 통해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사회의 법과 윤리를 불교보다 우선시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불교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염려되는 모습이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불교라는 원시종교가 현재에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근본 토대에는 언제나 계율이 있었다. 바른 계율의 이해는 과거의 것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일의 우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의 깨달음과 같이 계율에서 추구하는 것도 바로 우리가 함께 공생하고 화합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비로소 불교적 삶, 보살의 모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계율이 그저 고정적이고 딱딱한 금지 조항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그 계율을 멀리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인이 불교인일 수 있는 근본은 바로 계율을 지녀 불교의 구성원으로 있을 때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바른 삶의 모습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마음 자세가 필요한지 알려주는 것이 바로 계율인 것이다.

  다음으로 섭선법계는 계율을 통해 얻어진 불교인으로서의 바른 마음과 자세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만을 알고, 그것을 주의하며 살아가는 것은 일반 사회의 법률이다. 그러나 불교의 계율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더불어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동시에 말하고 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탐해서는 안 된다는 불투도계의 경우는 나의 것을 소중히 여기듯 남의 것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불살생계도 역시 우리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의 삶과 인격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잃지 않으려고 하듯이, 그 행동과 마음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 나타내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바른 실천, 섭선법계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섭중생계는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를 통해 화합된 보살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탐심의 삶이 아닌 우리가 더 이상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과 공존하고 시대와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가 바로 보살이다. 남의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은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생각은 무한 이기주의를 만들어 끝없는 고통을 가져온다. 때론 아주 작지만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보시하고, 환경과 사회를 위해 나의 땀과 시간을 헌신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가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회향’이라고 한다. 나의 보시가 남을 위한 것이었을지언정 그 결과는 언젠가 내 마음의 따스함, 행복으로 다시금 되돌아오고 그 안에서 참된 인간다운 삶이 성취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도 모두가 한결같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다. 그 행복의 근원에는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서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삶인 것이다. 나와 남을 함께 존중하고 그 안에서 서로 의지처가 되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그 행복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하는 것으로, 그것의 토대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보살계다. 오늘 하루 모두가 함께이며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할 때, 그 순간이 바로 바르게 계율을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보살로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법장 스님 2006년 일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2011년 비구계를 받았다. 해인사승가대학에서 수학 후, 일본 하나조노대 대학원에서 계율학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동국대 경주캠퍼스 겸임교수, 조계종 교육아사리, 일본 국제선문화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과학의 불교-아비달마불교의 과학적 세계관』, 『인터넷 카르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