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ㅣ시간을 나누어드립니다

 시간을 나누어드립니다 


임웅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돌아가신 어머님이 보고 싶다. 어머님이 환생하시어 더도 말고 딱 사흘간 나와 함께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흘 동안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셔야지. 그렇게 해서 내가 불효한 가슴앓이를 만 분의 1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흘 동안 어머님께 무엇을 해드리면 기뻐하실까? 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슈크림 빵을 한 쟁반 쌓아놓고 함께 먹는 것은 어떨까? 생전에 친구들과 동굴 구경 다녀오시고 그토록 감격하시던데, 모시고 동굴 투어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구경도 좋아하셨지! 헬렌 켈러가 사흘간 눈을 뜰 수만 있다면 하고 싶어 하던 목록을 어머님과 함께하는 게 최상의 선택일까?

  나는 더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무엇을 한들 어떠랴. 어머님에게는 그 무엇을 하든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흘이라는 시간이 소중할 뿐! 함께 산해진미를 먹든, 천하절경을 구경하든, 불후의 명화를 감상하든, 어머님에게 그건 부차적인 것일 뿐! 어머님에게는 아들과 같이 나누는 그 사흘간의 시간이 가슴 저리게 다가올 따름이리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모자간에 그저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천국에 들어선 기분일 것이다.

  내가 결혼하고 살림을 나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 명절이나 생일을 맞아 어머님 뵈올 일이 있으면, 얼른 안부 인사드리고, 얼른 밥 먹고, “나, 바빠요!”, “나, 급히 할 일이 있어요!”, “조금 후 중요한 일로 누굴 만나기로 했어요!” 하면서, 서둘러 집을 나왔었지. 무엇이 그렇게 바빴는지? 어머님의 서운해하시는 눈망울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었는지?

  내 교수 시절에 학생이 연구실로 들어오면, “용건이 뭐야?” 묻고 나서, “용건이 끝났으면 나가 봐!” 하곤 했었지. 내 별명 중 하나는 ‘용건 교수’였다. 제자들이 나를 찾은 건, 꼭 용건이 있어서라기보다 나와 몇 십 분간의 시간이나마 나누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뜻한 격려, 칭찬, 조언 같은 것은 금상첨화일 수 있지만, 정작 제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와 함께할 짧은 시간 그 자체였다. 용기 내어 연구실로 찾아온 제자를 시간 아끼려고 내몬 나를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했을까?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에게,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대화를 원하는 제자에게, 술 한잔하자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직장 동료에게, 요행을 바라고 찾아온 월부 책장수에게, 쓰다듬어달라는 강아지에게, 나는 얼마나 시간에 인색했던가! 불우한 이웃에게 후원금을? 재능 기부를? 선물을? 아니! 그보다는 불우한 이웃이 불행한 때에, 초라한 자리에서, 잠시나마 함께 있어준다는 것만으로 진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너무 바빠서 남에게 시간을 쪼개줄 수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가? 돈? 권력? 명예? 경력 관리? 스펙 쌓기? 유력 인사와의 친분 맺기? 바삐 살아 성공한 사람들의 말로를 보라. 재산 다툼하는 부자 집안의 골육상쟁, 감옥행이거나 자살로 마감하는 왕년의 권력자, 추문으로 추악하게 몰락하는 저명인사!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 재산, 권력, 재능, 명예, 지식 등등은 사람마다 누리는 차이가 있다. 평등하지 않다. 각자 죽는 날까지의 시간 길이를 모른다는 점을 빼고는 부자든 빈자든, 지위가 높든 낮든, 유명하든 아니든, 시간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된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똑같이 주어진 것은 죽음을 빼고는 시간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황금보다 더 귀하고, 생명만큼이나 값지다. 그토록 소중한 시간을 남에게 나누어준다고 생각해보라. 시간을 낸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삶이 힘에 겨워 허덕이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시간을 나누어드립시다.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요. 우리 함께 시간을 나눕시다. 내 시간을 당신에게 나누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나누어주세요. 서로 시간을 나누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란 경이로운 보배를 함께 나눕시다.

  무엇보다도 바쁜 일상에 지친 자신에게 시간을 나누어드리세요. 



임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로 31년간 재직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전공 서적 이외에 장편소설 『영성지수(靈性指數)』, 단문집(短文集)인 『센타크논 전문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