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손신영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전등사 대웅보전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 아래에는 사람 형상으로 보이는 조각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나부상 裸婦像)이며, 주막 여인이 벌 받는 모습이라고들 한다. 

  “대웅보전을 짓던 목수가 절 아래 주막의 여인과 사귀어 정이 들자, 불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품삯도 맡겼다.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일을 마치고 주막에 가니, 여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목수의 품삯을 가지고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심한 배신감에 휩싸인 목수는 주막 여인의 형상을 만들어 추녀를 받치도록 했다.”

  이 이야기는 주막 여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동시에 법문과 염불을 들으며 참회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석되고 있지만, 다소 생뚱맞다. 절을 짓는 목수가 주막을 드나들며 일을 했을 리 없고, 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며 기꺼이 재물을 기부하는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불교에서, 그것도 한 사찰을 대표하는 중심 불전에 목수 개인의 한을 담아 표출하는 게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를 받치고 있는 조각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나부상이 원나라 제국대장 공주라고 한다. 고려 충렬왕의 첫 부인인 정화 궁주가 자신을 괴롭히는 두 번째 부인, 제국대장 공주 형상으로 만들어 영원히 무거운 지붕 받치는 벌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정화 궁주는 충렬왕과 태자 시절 근친혼해 1남 2녀를 낳고 14년간 부부로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원나라 세조(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인 제국대장 공주와 정략결혼하자 후궁으로 전락해, 제국대장 공주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했다. 남편 충렬왕과의 만남을 금지당하고, 별궁으로 쫓겨나고, 누명을 쓰고 감금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화 궁주는 자신의 원당, 전등사에 옥등과 대장경을 전하며 기도를 봉행토록 했다. 이때 사중(寺中)에는 대시주 정화 궁주를 괴롭히던 제국대장 공주를 벌주고자 하는 기류가 자연스레 형성되어, 대웅보전 추녀를 받치는 형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목수에 의한 나부상 이야기보다는 설득력이 있지만 역시 불교적이라 하기는 어렵다. 정화 궁주의 기막히고 원통한 마음에 동조하긴 하지만,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이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원나라 공주를 형상화한 조각상을 만들어 지붕을 받치도록 하는 게 가능했을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원숭이상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원숭이 얼굴도 아니고, 꼬리도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장천1호분 역사상

삼실총 제3실 서벽 역사상


  그렇다면 전등사 대웅전 추녀 아래 조각상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 

  전통 상징 연구가 허균 선생에 따르면 이 형상은 난쟁이며 역할은 ‘불교 외호 신중으로, 부처님을 찬탄·공양하며 불전을 수호하는 나찰(羅刹)’이라 한다. 그러나 최근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 조각을 연구한 신은미 씨는 ‘불법을 수호하는 야차(夜叉)’로 해석한 바 있다. 나찰과 야차에 대해 심재관 교수는 ‘초기 힌두교의 귀신 무리였다가 불교의 수호신으로 수용되었는데, 귀신이나 도깨비처럼 묘사되며 개념이 혼용되기도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나찰은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사찰의 수호신으로 조각되고, 야차는 인도 초기 석굴과 석탑의 출입문에 불법을 수호하는 수문장으로 조각되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를 받치는 조각상의 역할은 불법과 불전, 불자(佛子)를 수호하는 것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상부의 무거운 물체를 받치는 형상에 주목하면, 우리 전통 미술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5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에 천장을 받치는 역사상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천1호분이나 삼실총에는 팔다리 근육이 묘사된 역사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 두 팔을 올려 천장을 받치고 있다. 

  이처럼 형상만 놓고 보면, 전등사 대웅보전 추녀를 받치는 조각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천장을 받치는 역사상’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즉 그림에서 조각으로 장르만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수와 주모 이야기로 윤색된 전등사 대웅전 추녀 아래 조각상은 이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세간의 흥미는 덜하겠지만 ‘우리 전통 미술의 역사상에서 비롯된 불교의 수호신상’으로 재정립되어야 하겠다. 



손신영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제주대학교 외래교수이다. 한국 전통 건축을 근간으로 불교미술을 아우르는 통섭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