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교 이야기 ㅣ 방황의 끝에서 맞이한 보살의 삶

방황의 끝에서 맞이한 보살의 삶


남지심 소설가






  내가 불교를 나의 종교로 받아들인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그로부터 40여 년 이상 불교문학을 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살고 있으니 나의 삶은 불교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젠가 내 삶 전체를 조명해보면서 불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번에 『불교문화』에 싣는 원고를 기단으로 해서 앞으로 기회 닿는 대로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가다 보면 계획했던 일이 마무리되어질 것이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짝이 헌책방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그때만 해도 돈을 주고 책을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울 때라서 나도 친구 따라 헌책방에서 부지런히 책을 빌려다 읽었다. 그렇게 책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든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상당한 양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 덕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문학에 눈을 뜨고 문학소녀의 감상에 젖어들어 특활 시간에는 문예반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교에서 발행하는 ‘백합’이라는 신문에 수필을 기고하기도 해 주변에서는 글 잘 쓰는 아이로 인정을 받았다. 학교에선 1년에 한 번씩 연말이면 군인 아저씨한테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그때 반 친구들이 내 옆으로 몰려와 내가 쓴 위문편지를 그대로 베껴서 보냈다. 

  그즈음 문예반에 같이 나가던 친구가 다가와서 ‘대학에 다니는 친척이 문학 동아리 회장인데 그 친척한테 이야기하면 우리도 그 동아리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꼬였다.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자격 미달이긴 하지만 회장인 친척한테 부탁하면 받아줄 거라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친구와 함께 대학생들이 모이는 문학 동아리에 나가게 되었다. 하도 오래된 일일 뿐 아니라 잠시 나가다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 문학 동아리 이름도 회장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그 문학 동아리 회장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 내 인생을 바꾼 첫 번째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신구문화사에서 출판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은 세로쓰기로 조판되었는데 한 페이지를 상하로 나눠서 편집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종이를 아끼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선물로 받은 그 책은 480페이지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책을 지금 식으로 편집하면 1,200페이지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톨스토이는 34세부터 39세까지 6년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썼다. 그 책이 발간되자 독자로부터 팬레터가 날아오기 시작했는데 그 양이 하도 많아 두 사람이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고 한다. 팬레터 중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 ‘당신은 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독자로부터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은 톨스토이는 글 쓰는 일을 사기 행위로 규정하고 절필했다. 자기 자신은 그런 찬사를 들을 인물이 못 되는데 독자들이 자신한테 속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후 톨스토이는 장기간에 걸쳐 글을 쓰는 대신 남이 쓴 글을 읽었다. 그때 읽은 책이 무려 10만 권이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발간된 명작을 탐독한 톨스토이는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명언 명구를 뽑아 365단락의 사색의 장을 만들었다. 그게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다.

  내가 붓다의 가르침을 처음 접한 것도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서였다. 『인생독본』에는 붓다의 말씀, 우파니샤드 등으로 표기한 내용이 상당량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과 인연을 맺은 나는 고등학교 2, 3학년을 그것을 외우는 데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빨간 줄을 치며 읽고 또 읽다 보니 나중에는 책이 너덜너덜해져서 무명실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시절만 해도 책을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무명실이 드러날 정도로 제작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인생독본』의 내용을 거의 머릿속에 집어 넣은 나는 학교 공부가 너무 시시하게 느껴졌고, 공부를 잘하려고 안달하는 친구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다음은 뭔데?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인생을 화려하게 가꾸어가면 그다음은 뭔데? 이런 식의 회의를 거듭하던 나는 차츰 허무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이런 허무감 속으로 빠져든 것은 거꾸로 말하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는 그 무엇에도 가치를 부여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긴긴 방황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무려 15년이었다. 내가 15년이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은 18세 때부터 시작한 그 방황이 32세 때 멈췄기 때문이다.

  32세 때 일본의 불교학자 다마키 고시로가 쓴 『화엄경의 세계』(현암사 刊, 1976)를 손에 쥐면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엄경의 세계』를 손에 쥔 나는 『인생독본』을 손에 쥐었을 때처럼 빨간 줄을 그으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살십지품」에 이르자 내가 몸담고 있던 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 몸이 하늘 위로 솟구치면서 천지에 향내가 진동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찾고 있던 답이 보살의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살의 삶은 그 이전에도 수없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답으로 다가온 것은 그때 그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청춘 예찬을 들으면 씁쓸하게 웃는다. 청춘이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아서다. 심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던 내 청춘, 그 청춘을 예찬하다니!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답을 찾은 나는 한동안 환희심에 들떠 있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힘이 내면에서 솟구치는 걸 느꼈다. 수행을 하면 당장 어떤 경지에 오를 거 같고, 학문을 하면 당장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 알 수 없는 힘에 들떠 있던 흥분이 장시간 지속되다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런 몇 년 후 『동아일보』에 박완서 선생이 40이 넘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죽음이라는 명제를 집요하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인 국어 선생을 일단 죽는 걸로 설정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쓰는 소설이라 한 달간은 헤맸지만 그다음부턴 하루에 원고지 100장에서 150장씩 쓰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 2주 만에 1,200매 분량의 장편소설을 끝낼 수 있었다. 다듬은 원고를 보자기에 싸들고 집을 나온 나는 꽃 한 다발을 사서 조계사로 가 대웅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108배를 드렸다. ‘이 소설이 당선되면 부처님 법을 세상에 알리는 불교문학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나의 첫 번째 소설이 『솔바람 물결소리』다. 『솔바람 물결소리』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다. 다마키 고시로가 쓴 『화엄경의 세계』는 내 인생을 바꿔놓은 두 번째 관문이었다.

  얼마 전에 부산에 있는 한 부인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노랗게 절은 『솔바람 물결소리』를 비닐에 싸서 들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가장 힘든 시절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지켜준 힘이 되었음을 작가에게 꼭 알리고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날 그 부인이 남기고 간 말은 오히려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인생독본』과 『화엄경의 세계』가 나를 변화시켰듯, 『솔바람 물결소리』도 한 분의 생애에 힘이 되었다니 작가로서 보람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책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힘에 경건함마저 느꼈다. 『솔바람 물결소리』는 내가 불교를 짝사랑하면서 먼발치에서 불교를 바라보며 쓴 작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설인 『우담바라』는 내가 불교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불교와 깊은 밀애의 행복감에 젖어들면서 쓴 작품이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내 두 번째 소설 『우담바라』에 얽힌 이야기도 하고 싶다.  


남지심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장편 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우담바라』(전 4권), 『연꽃을 피운 돌』, 『한암』, 『담무갈』(전 4권), 『청화 큰스님』(전 2권), 『욕심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새벽하늘에 향 하나를 피우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