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불교와 폭력ㅣ 미얀마 사태와 불교계

 미얀마 사태와 불교계



정기선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강사, 미얀마불교문화연구소 소장





쿠데타의 암운과 미얀마 승가

  총체적 난국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20년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민주 사회 건설과 경제 성장의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으려던 계획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자 미얀마의 민중들은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일으켜 군부에 저항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9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금융 시스템은 무너지고, 의료 현장이 마비되었으며, 코로나 감염자들의 폭증과 연이은 사망자들로 인해 화장장은 시신들로 넘쳐났다. 쿠데타로 경건하고 신심 깊은 불교도들에 의해 유지되어오던 미얀마 불교 사회의 평온이 깨지면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국가적 위기 때마다 앞장서며 절대적 존경을 받아오던 승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거 영국에 의해 왕정이 무너지고 주권을 빼앗긴 후 미얀마인에게 유일한 국가적 상징으로 남아 있던 승가는 대영 투쟁에서부터 2007년의 샤프란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행보를 통해 민중으로부터 큰 지지와 존경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 같은 항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금번 쿠데타 이후 미얀마 승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많은 미얀마 민중들이 승가에 기대와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대와 의혹이 교차하는 지점에 두 승려가 서 있다. 한 사람은 미얀마의 최고위급 승려이고 또 다른 이는 평범한 젊은 비구다. 물론 이 두 승려가 미얀마 불교 승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가는 세속의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미얀마 승가가 친군부 성향의 불교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일부 장로승들과 2월 7일부터 꾸준히 평화 행진을 이어온 만달레이 승가연합의 젊은 승려들 사이에서 쿠데타가 발발한 이후의 대응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기에 이에 대한 미얀마 민중들의 엇갈린 평가를 제3자의 시선에서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장로승들의 행적은 국영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고 있지만 만달레이 승가연합이나 소장파 승려들의 활동 상황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 부분은 현지에 거주하는 미얀마 스님들과 지인의 SNS, 교민 카카오톡 방 등 단편적인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인가, 군부인가? 흔들리는 장로 승가

  여기 한 승려가 있다. 그는 미얀마 승가의 원로이자 고승으로 추앙받으며 쿠데타 이전까지 많은 민중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불교 대학을 설립하고 병원을 짓는 등 불교 교육과 복지사업에 헌신해온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아비다자 마하라싸구루(Abhidhajamahārahthaaguru : 존귀하고 위대한 국가의 스승)라는 불교 승려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칭호를 받으며 국사의 지위에 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시타구 사야도(Sitagu Sayadaw, 84세)다. 계율엄정주의를 지향하는 쉬웨진 종파(Shwegyin Nikāya)의 부승왕(Vice Sangha Rājā)인 시타구 사야도는 강성 미얀마 불교 민족주의 단체인 마바타(Ma Bha Ta, 미얀마애국협회)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이 단체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극우 불교 승려 위라투(Wirathu)가 자신의 동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의 불교민족주의적 성향은 2017년 5월 로힝야족 학살에 연루된 육군 장교들에게 행한 설법에서도 드러난다. 이 설법에서 그는 비불교도인 로힝야족들을 효과적으로 비인간화함으로써 그들을 죽이는 것은 큰 업장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라고 해 군 장교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주었다. 

  군부 쿠데타 이후 침묵에 대해 비판이 일자 시타구 사야도는 2021년 3월 쉬웨진 종파의 장로승들과 함께 쿠데타 수뇌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에게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공격 및 약탈과 파괴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자애(mettā)로 행동하는 훌륭한 불교도가 되어줄 것을 바란다며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서신 말미에 불교 전통에 따른 시왕법(十王法)을 행하라는 은밀한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이는 오히려 군부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의 초안과 최종본의 내용이 서로 불일치해 비난이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시민불복종운동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부가 주최하는 대리석 불상의 봉안식에 증명 법사로 참석했는데 그의 종교적 권위 때문에 민중들은 그가 군부 지도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직후 SNS에는 한 승려가 뒷짐을 진 채 ‘나 몰라라’ 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카툰과 함께 “나에게 보시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국가의 재산을 훔쳤건, 강탈하건, 혹은 살인자건, 가난하건, 상관없이 포교할 것이다”라는 냉소적인 만평이 등장하며 그를 비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만평은 ‘삼보를 비방하면 악도에 떨어진다’는 믿음을 지닌 미얀마 불교 사회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예다. 따라서 쿠데타 이후 시타구 사야도에 대한 민중들의 존경심은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그는 과연 앙굴리마라를 교화했던 붓다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수행자의 길에서 전사의 길로

  그리고 여기 30대 초반의 또 다른 승려가 있다. 그는 양곤의 봉제 공단 지역에 위치한 담마다나 수도원의 원장이자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던 승려로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민주주의가 유린되자 동료 및 친구들을 이끌고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했다. 그런데 2월 14일 양곤의 흘라잉따야 지역에서 열린 군부 퇴진 시위에서 60여 명에 달하는 인명이 살상되고 다수의 승려들과 시민들이 체포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군부의 수배령으로 인해 당일 시위에 참가하지 못했던 그는 동료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가 피신해 있는 동안 그의 모친 또한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불행히도 그는 수배령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동료 승려들과 친구들의 죽음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평화와 자비를 상징하는 가사를 벗어 던지고 피와 땀이 얼룩진 군복을 입기로 결정했다. 그가 전사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군부의 검문을 피해 반군의 훈련 캠프를 찾아왔을 때 반군 지도자들은 그를 두고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미얀마인들의 자유를 향한 염원의 무게를 감당하고자 그는 수행자의 길을 버리고 전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우 케이타라(U Kaythara, 34세)다.

  불살생의 종교적 서약을 버리고 살생을 해야만 하는 전사의 길로 들어선 그는 군사 훈련 도중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뒤를 따르려 하는 도반들에게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며 승가에 남아서 재가자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호소했다. 승려였던 우 케이타라가 꿈꿔온 것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불교 대학을 건립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그 꿈은 접어야 한다. 악한 자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선한 자들의 침묵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방관이라는 것을 우 케이타라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든 미얀마 민중들은 그의 고난에 찬 선택에 찬사를 보냈다.  


갈등하는 미얀마 불교 사회

  여기 대비되는 두 승려들의 선택을 두고 뭐라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실 쿠데타는 물론 승가 공양을 두고도 빈부 격차에 따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번 사태를 계기로 경건한 미얀마 재가 불교 사회에서 승려에 대한 보시와 관련해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SNS에서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승려들에 대한 비평이 많이 떠돈다. 소유물에 제한이 있는 승려들에게 공양물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자동차와 스마트폰까지 있는데 반해 재가자들은 비가 새는 집과 당장 오늘 한 끼를 걱정해야 하며 정화되지 않은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 친정부 성향의 승려들에 국한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종교적 책임성은 현저하게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삼보에 대한 보시는 큰 공덕을 낳는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행위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보시와 공덕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 4년 연속 세계 기부 지수 1위였던, 그리고 현재도 기부 지수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보시와 공덕 추구의 문화가 금번 쿠데타에서 보여준 장로 승가의 이중적 태도로 인해 전체 미얀마 승가가 오해를 받음으로써 승가는 물론 재가 불교 사회의 갈등이 격화되고 무너져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기우일까? 복전(福田)으로서 존경받던 미얀마 승가 또한 쿠데타 이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재가자와의 관계 설정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도덕성과 청정성을 바탕에 두고 있는 종교가 권력 유지를 위한 투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정치권력 특히 군부 정권과 손을 잡게 되면 종교의 도덕적 권위는 크게 손상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07년 샤프란 혁명에서 얻었던 대중적 지지와 존경은 이번 군부 쿠데타에 대응하고 있는 승가의 모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세속의 후원 없이 승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제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는 정치권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바탕을 지탱하는 신앙의 문제가 되었다.(이제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는 정치권력 지형만의 문제가 아니라 승속의 정신적 토대를 지탱해오던 불교 신행의 문제가 되어가는 듯하다.)

금번 미얀마 사태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애도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정기선 동국대학교에서 미얀마 불교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철학 박사). 현재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강사이자 미얀마불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주요 번역서로 『실제적인 위빠싸나 명상수행』이 있고, 「미얀마의 불교 문화양상 연구」, 「미얀마 불교의 적수의례」, 「스리랑카 불치사 공양의례 일고」 등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