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종교가 만나려면|불교와 유교 (2)

인간이란 무엇인가 (불교, 유학의 입장에서) 


송석구

전 동국대학교 총장




들어가는 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의 본질은 동서양은 물론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문자가 생긴 이후에 대개 인간은 정신과 물질(육체)로 그 본질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우리는 동의할 것이다. 서양의 중세에서는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가 정신은 사유이고 물질은 연장이라는 증명을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명석, 판명하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실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는 현존하는 신이라고 했으며 정신과 육체가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은 기회원인론을 주장해 이원론(二元論)의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피노자(Spinoza, 1632~1677)는 정신과 육체는 신의 속성으로 데카르트의 어색했던 기회원인론을 극복하는 일원론(一元論)을 주장했다.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는 이러한 스피노자식의 실체관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참된 단순 실체란 ‘단자(monad)’이며 이것들은 자연의 진정한 원자이자 사물들의 원소라고 주장했다. 원자는 연장된 물체라고 여겨지는 반면에 단자를 힘 혹은 에너지라고 말했다.

  정신과 육체가 인간의 근본이지만 서양에서는 정신은 이성과 감성으로 나뉘고, 감성과 이성은 인식의 근거로 인식되었지 이성(또는 동양의 마음)을 깨닫겠다는 의식은 없었다. 그러므로 서양의 과학은 발전했고 동양은 마음의 본질을 논하기 전에 마음을 깨달아야 자유인이요 해탈인이요 성인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전제되고, 결국 이 마음을 해탈하는 방법이 전개되었다. 


불교의 깨침의 세계

  불교는 인간의 본질을 마음(정신)과 육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마음은 공적(空寂) 성성(惺惺), 즉 본원심(本源心) 또는 진여심(眞如心)이며 다른 하나는 무명취상심(無明取相心) 또는 생멸심(生滅心) 혹은 번뇌망상(煩惱妄想) 등이라고 한다. 우리는 진여 본원심을 깨달아야 참된 자아로 돌아간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마음이야 깨달아야 하지만, 마음의 자성(自性)인 청정(淸淨)한 마음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육체가 둘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육근(六根)이라는 여섯 가지 문이 있는데 다섯 가지는 감각기관에 해당하고 한 가지는 감각을 통찰하는 의식을 말한다. 다섯 가지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을 말한다. 눈으로 보고(色) 귀로 듣고(聲), 코로 냄새 맡고(香), 혀로 맛보고(味), 몸으로 접촉하는(觸)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기관 감각 대상(五境, 안·이·비·설·신)에 의(意)는 이것을 통솔한다. 의근은 마음으로서 마음으로 아는 것은 법경(法境)이다. 여섯 가지 근본 뿌리(六根)에 그의 대상인 육경(六境)과 그 대상을 아는 육식(六識)의 근거가 곧 마음의 근본이다. 따라서 육식과 육식의 근거인 제7식 말라야식(잠재의식)과 제8식인 아뢰야식(청정 자성 자체)으로 나뉜다. 유식적으로 말하면 이 제8식을 깨쳐야 한다. 이와 같이 불교는 육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바로 이 육체를 통해서 일어나는 육근, 육경, 육식의 18계의 세계를 집착하지 않고 극복할 때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선의 문(禪門)과 교문(敎門)으로 나누는데 선문은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해, 간화선(看話禪)으로 대표된다. 즉 화두(話頭), 예를 들면 조주(趙州從諗, 778~897) 스님이 어떤 승이 와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무(無,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는가 하는 의심을 해 그 의심을 타파하면 깨닫는다는 요령이다. 여기에는 화두를 준 스승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고 화두를 받은 사람은 철저한 의심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큰 믿음(大信), 큰 분심(大憤心),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선법은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以無言至於無言者) 것을 말하고, 교법은 말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以有言至於無言者) 것을 말한다고 했다. 

  교법으로서의 깨달음의 길은 무엇인가? 우선 오계(五戒, ①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②도둑질하지 말라 ③음행하지 말라 ④거짓말하지 말라 ⑤술을 마시지 말라), 십선(十善, 위 오계에 ①이간질의 말 ②독한 말 ③비단 같은 말로 유혹 ④탐욕 ⑤어리석음), 팔정도(八正道, ①正見 ②正思惟 ③正語 ④正業 ⑤正命 ⑥正精進 ⑦正念 ⑧正定) 육바라밀(六波羅蜜, ①布施 ②持戒 ③忍辱 ④精進 ⑤禪定 ⑥般若), 보현십대행원(普賢十大行願)을 들 수 있다. 물론 교법으로 다른 실천도 있어 간경(看經), 염불(念佛), 주력(呪力)을 들 수 있다. 

  그중에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십대행원은 깨침의 실천적 행위이고, 이 믿음을 갖고 실천하면 성불(成佛)한다고 믿는다.


● 예경분(禮敬分) 티끌같이 많은 모든 중생을 부처님같이 공경하겠습니다.

● 찬양분(讚揚分) 티끌같이 많은 중생, 모든 사람과 사물을 칭찬하겠습니다.

● 공양분(供養分) 티끌같이 많은 불보살에 공양하겠습니다.

● 참회분(懺悔分) 모든 업장을 참회하겠습니다. 수억 겁을 지나면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겠습니다. 

● 수희분(隨喜分)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겠습니다. 일체중생 어떤 종류의 중생이 짓는 공덕이라도 극진히 존경하고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 청법분(請法分) 청법해주시기를 청하겠습니다. 모든 부처님께 몸과 말과 뜻을 기울여 설법해주시기를 권청합니다.

● 주세분(住世分)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겠습니다.

● 수학분(隨學分)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겠습니다. 부처님의 견고하신 발심과 불퇴전의 정신을 배우겠습니다.

● 수순분(隨順分) 항상 중생을 수순하겠습니다. 진법계 허공계에 있는 모든 중생을 수순하겠습니다.

● 회향분(回向分)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회향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십대행원은 그중 하나만이라도 지키고 실천하면 곧 부처를 이룬다. 

  불교는 마음의 본질이 무엇이냐 보다 마음 자체의 깨달음에 중점을 둔다.


유학의 공경의 세계 

  유교, 여기서는 성리학(性理學)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성리학자들은 불교를 비판한다. 한마디로 불교가 수행을 위해 출가해 독신으로 산다는 이유 때문이다. 출가하면 혼자 살고 결혼을 하지 않으니 자손을 둘 수 없고 따라서 부모를 봉양하고 자손의 연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자연히 무군무부(無君無父)를 비판한다. 국가에 충성하지 않고 부모를 떠나니 멸군(滅君), 멸부(滅父), 멸인륜(滅人倫)으로 불효 불충을 탄핵한다. 그러나 불교 출가인은 출가해 깨달음으로써 부모에 효도한다고 보고, 또한 국가에 충성한다고 한다.

  불교의 승려가 공부를 위해 출가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출가할 수 없는 노릇이라 탓할 바가 아니고, 멸인륜은 부모를 모시지 않고 있으니 인륜의 하나를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불교는 출가해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데 비해 성리학은 재가해 부모를 모시며 자손의 연속을 통해 효를 실천한다고 본다. 성리학은 현세성과 혈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 현실 세계에 살자면 윤리 도덕을 지킴으로써 사회 공동체의 삶을 융통성 있게 유지할 것이다.

  성리학도 역시 인간의 본질은 마음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마음과 육체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마음은 허령지각(虛靈知覺) 또는 허령불매(虛靈不昧)라 하기도 하고 또한 마음도 육체도 모두 이기(理氣)로 되어 있으며 마음은 담연허정(淡然虛靜之氣)한 순수한 기가 모여 이루어져 있으며 육체는 탁한 기가 모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인간은 이기(理氣)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理)는 무형(無形), 무취(無臭), 무위(無爲)로써 영원, 변함이 없다. 기(氣)는 유형(有形), 유취(有臭), 유위(有爲)로써 유한하며 변화, 무상하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변함없는 진리를 원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理)이다. 성리학에선 이(理)란 만물의 구성인 질료인 기(氣)와 기를 기가 되도록 하는 이유가 곧 소이연(所以然)인 이(理)이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소이는 이이고 이 이(理)는 곧 사단심(四端心)의 소이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이다. 우리 마음도 이(理)와 기(氣)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단심은 이(理)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다. 즉 인(仁)이 있다는 단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음이요 수오지심(羞惡之心, 악행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선(善)의 단서이다. 정의롭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음이다. 또한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라고 했고, 시비지심(是非之心, 옮고 그름을 아는 것)은 지(智)의 단서라 했다. 따라서 이 단서인 사단심을 중용으로 지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마음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곧 성인(聖人)이라 보았다. 인간의 이상인 성인(聖人)은 곧 인심(人心)인 칠정(七情, 喜怒哀樂愛惡欲)을 윤집궐중(允執厥中)해 순수한 사단심(四端心)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중(中)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을 살펴야 한다. 사단심은 도심(道心)이라 해 도심이 일어나도록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곧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이다. 

  성리학에서도 마음을 닦아 활연관통(豁然貫通, 도道를 환히 깨달음)해야 성인이라 했다. 또한 마음에 거짓이 없어야(思無邪) 한다고 하기도 했다.

  활연관통의 방법인 거경은 주일무적(主一無適, 마음을 한군데 집중해 잡념을 버리는 일, 程朱가 주장)해 항상 공경스러움이 마음에 가득 차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유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말하고 있다. 자기를 닦아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해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해 궁극적으로 중생에게 보살행을 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오는 말

  여하간 불교나 유학이나 마음을 바탕으로 마음을 깨닫고 그를 통해 백성을 위해 활용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같다고 보인다. 불교는 마음을 깨닫는 방법이 연역적이고 유학은 귀납적으로 주변의 사물을 격물치지(格物致知)화해 생각의 삿됨이 없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함이다.

  동양에는 서양이 말하는 철학, 즉 애지(愛知)보다는 내가 또한 모든 인간의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서양의 철학은 순수한 지적 추구로 인간과 우주의 보편적 진리를 찾았기 때문에 인간학보다 과학적 기초 확립에 더욱 기여했다고 본다. 단자는 양자역학 그리고 입자, 상대성 원리, 블랙홀까지 이어져왔다. 그러나 또한 인간학적으로 정신의 위대성을 내가 체험하려는 노력을 병행할 때, 동서양의 인간관이 함께 어우러질 것이다.

  아직도 마음이 마음을 찾아 끝없이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우리는 마음으로 마음을 찾는 희망이 있기에 이 세상은 건전하다. 



송석구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만대학교 철학연구소에서 수학했다. 동국대의료원 원장, 동국대(13대·14대)·동덕여대·가천의과대 총장, 한국철학회 회장,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제4대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노철학자의 인생수업』, 『다산의 공부』, 『70일간의 마음공부』, 『율곡철학 강의』, 『불교와 유교 강의』, 『대통합』, 『자강(스스로 길이 되어 가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