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이란 무엇인가2 ㅣ 우식이 밝히는 식의 심층구조

유식이 밝히는 식의 심층 구조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유식의 발견

  유식(唯識)은 ‘오로지 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우리 의식과 무관하게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자아와 세계가 사실은 모두 우리의 마음, 식(識)이 만든 가아(假我)와 가법(假法)이며, 따라서 우리의 식 바깥에 따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을 줄인 말이다. 한마디로 일체는 마음이 만든 가상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유식’ 또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금방 반문할 것이다. 우리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나 또는 이 세계가 어떻게 마음이 만든 가상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세계가 사실은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매트릭스>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네오가 경험하는 세계는 그에게 입력된 정보가 만들어내는 세계인 가상현실이지 객관적인 세계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그 가상현실을 실재하는 현실인 줄 여기면서 살아간다. 마치 꿈을 꾸면서 꿈속에서 그게 실재인 줄 알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과 같다. 물론 매트릭스 세계 속에 살면서 ‘이것이 매트릭스구나’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꿈속에서 ‘이것이 꿈이구나’를 알기 어려운 것과 같다.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만 하듯이, 이 세계가 가상 세계라는 것을 알려면, 인생의 긴 꿈에서 깨어나는 대각(大覺)이 있어야 한다.  

  인생의 긴 꿈에서 깨어나는 대각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각고의 노력, 기나긴 수행 끝에 얻어지는 깨달음일 것이다. ‘일체유식’은 그렇게 요가를 수행하던 수행자들에 의해 주장된 내용이며, 따라서 유식학파를 유가행파(Yogacara)라고 부른다. 이들의 깨달음이 4~5세기경 무착과 세친에 의해 체계화되어 유식사상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들이 수행을 통해 깨닫고 발견한 마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리 각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각자의 개별 의식, 표층 의식, 제6의식이 아니다. 아와 법을 만드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은 우리의 일상적 표층 의식과는 다른 차원의 마음이다. 표층 의식은 의식 바깥의 세계를 객관 실재라고 이미 전제하고 작동하는 식이지만, 세계를 만드는 마음은 우리의 표층 의식보다 더 깊은 심층에서 작동하는 식(識)이다. 우리의 일상 의식의 문턱 아래에 있어 우리의 의식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세계를 식 바깥의 객관 실재라고 여긴다. 반면 수행자들은 수행을 통해 표층 의식 아래 깊이 감추어진 심층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식이 현상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일체유심조 내지 일체유식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발견한 아뢰야식은 과연 어떤 식인가?


식의 심층 구조

  유식은 일체를 식으로 설명하니 그 식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심층 아뢰야식에 이르기까지 유식이 인간의 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순서대로 살펴보자. 

  ① 전5식: 우리가 세계와 접해 세계를 아는 가장 기본적인 식(識)은 감각이다. 눈이 색깔을 보고, 귀가 소리를 듣는 등이다. 감각은 다섯 감각기관인 5근(根), 안·이·비·설·신(눈·귀·코·혀·몸)이 그 각각에 상응하는 감각 대상인 5경(境), 색·성·향·미·촉(색깔·소리·향기·맛·감촉)을 보고 듣고 느끼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불교는 이 다섯 가지 감각을 5식(識)이라 하고, 이것을 그다음의 식인 제6식 앞의 5식이란 의미에서 전5식(前五識)이라고 부른다.  

  ② 제6의식: 우리의 대상 인식은 감각인 전5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각각의 감각기관을 통해 주어진 다양한 감각 자료들, 예를 들어 색깔이나 향기나 맛 등을 한데 모아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소위 객관적 인식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자면 다양한 감각 자료들을 종합해 인식하는 사유 능력, 사유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인식을 성립시키는 여섯 번째 근, 제6근이며, 불교는 이 사유 기관을 뜻, 의(意)라고 부른다. 그리고 의근(意根)에 의거해서 일어나는 식을 근의 이름을 따라 ‘의(意)의 식’이라는 의미에서 ‘의식(意識)’이라고 부르고, 앞의 5감각 다음의 식이란 의미에서 ‘제6의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마음으로 간주하는 의식이 바로 이 제6의식이다. 깨어 있을 때 활동하다가 잠이 들거나 기절할 때 잠시 멈추기도 하는 식, 그렇게 끊어짐이 있는 식이 제6의식이다. 5근에 각각 상응하는 대상(경)이 있듯이, 의근에도 그에 상응하는 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제6경인 법경(法境)이다. 사유 대상인 개념, 관념에 해당한다. 유식은 감각 대상인 5경을 구체적 개별적 상인 자상(自相)이라고 하고, 사유 대상인 법경을 추상적 일반적 상인 공상(共相)이라고 구분한다. 그런데 제6의식은 법경뿐 아니라 감각의 5경까지도 모두 의식한다. 안식의 대상인 빨간색(색경)이나 비식의 대상인 향기(향경)를 의식하는 것이 5경을 의식하는 경우이며, 빨간색이나 향기를 눈앞 장미에 속하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은 5경과 더불어 법경을 함께 의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의식의 대상은 감각의 5경에다 법경을 더한 6경이 된다. 6경을 ‘먼지들의 쌓임’이란 의미에서 6진(塵)이라고도 부른다. 

  ③ 제7말나식: 우리의 식은 감각과 의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5식은 각각의 경을 감각하는 식이고, 제6의식은 5경을 포함한 일체 대상, 6경을 아는 식인 대상 의식이다. 그런데 의식은 의근이 대상을 아는 식이지, 대상을 아는 의(意) 자신을 아는 식이 아니다. 유식에서는 의식의 근이 되는 의(意)가 의 자신을 아는 식을 제6의식 다음의 식이라는 의미에서 제7식이라고 하고, 이것을 의(意)의 범어 마나스(manas)를 그대로 음역해서 ‘말나식(末那識)’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제6의식 다음의 제7말나식이다. 제7말나식은 의의 자기의식, 의근이 스스로를 자아로 여기는 식, ‘나는 나다’라는 생각으로 자아를 고수하고 지키려는 본능적 자아식이다. 개별적 자아식, 분별적 자아식이며, 소위 ‘개별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제6의식이 의거하는 근이 의근이고, 의근의 자아식이 제7말나식이다. 이는 곧 제6의식은 제7말나식의 본능적 자아식에 근거한 식임을 말한다. 유식은 제7말나식을 무아를 알지 못한 채 개별 자아에 집착하는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의 식, 근본번뇌식으로 간주한다. 

  ④ 제8아뢰야식: 유식에 따르면, 우리의 식은 전5식, 제6의식, 제7말나식으로 끝이 아니다. 그다음의 식이 바로 일체유심조, 일체유식의 식인 제8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을 기점으로 보면 전5식, 제6의식, 제7말나식은 모두 제8식 앞의 식이기에 합해 전7식(前七識)이라 부르고, 또 제8식이 변화해 일어나는 식이기에 7전식(七轉識)이라고도 부른다. 이와 같이 전7식의 기반 내지 바탕이 되는 제8아뢰야식의 ‘아뢰야’는 범어 알라야(alaya)의 음역이다. ‘알라야’는 ‘쌓다, 거두다, 함장(含藏)하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아뢰야식을 의역해 함장식 또는 장식(藏識)이라고 부른다. 아뢰야식은 그렇게 자신 안에 무엇인가를 함장하고 있는 식이다. 아뢰야식은 과연 무엇을 함장하고 있는가? 

  제8아뢰야식은 그 기반 위에서 일어나는 7전식의 감각이나 사려분별이나 의지적 활동 등 모든 개별적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를 함장하고 있다. 유식은 경험을 통해 얻는 정보를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나무가 씨앗을 남기고 그 씨앗 안에 나무의 정보가 모두 들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경험, 행위, 업(業)이 남기는 힘, 에너지, 업력(業力)을 씨앗, ‘종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심층 마음인 제8아뢰야식은 우리의 표층 식인 7전식이 남기는 종자를 함장하고 있는 식이다. 이렇게 아뢰야식 안에 함장된 종자, 우리 안에 쌓인 경험의 정보가 다시금 우리가 경험할 세계를 형성하므로 아뢰야식이 일체를 형성한다는 ‘일체유심조’, ‘일체유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상 언급한 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제8식 다음의 식은 없는가? 대승불교 중에는 제8식 다음의 제9식을 설정하는 종파(섭론종)도 있다. 아뢰야식이 함장하는 종자는 우리의 번뇌에 물든 유루(有漏)의 행위가 남기는 번뇌 종자이다. 따라서 그런 종자를 함장하는 아뢰야식을 번뇌에 물든 염오식(染汚識) 내지 허망한 망식(妄識)으로만 간주하면, 인간에게 있는 본래 부처의 마음, 번뇌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은 제8식 다음의 제9식으로 따로 설정하게 된다. 그렇게 설정된 제9식은 ‘때(mala) 없는(a) a-mala식’이란 의미에서 ‘무구식(無垢識)’으로 의역되거나 ‘아마라식(阿摩羅識)’ 또는 ‘아말라식(阿末羅識)’식으로 음역된다. 

  그러나 『대승기신론』 내지 『성유식론』의 유식은 우리 마음의 염오와 청정을 서로 다른 두 식으로 분리하지 않고, 제8아뢰야식의 두 측면으로 간주한다. 아뢰야식이 염오식이 되는 것은 아뢰야식 안에 함장되는 종자가 우리의 번뇌적 업(業)에 의해 남겨지는 번뇌 종자, 유루(有漏) 종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종자를 함장하고 있는 제8식 자체는 번뇌 너머의 식, 청정식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유식은 염오와 청정을 제8식의 두 측면으로 보기에 제8식 너머에 제9식을 따로 설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식에서 인간의 식은 총 8가지, 8식이 전부다. 


제8아뢰야식 : 

아뢰야식 내 종자 : 유루 종자 - 염오식

아뢰야식 자체 : 무구식 - 청정식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서양 철학(칸트)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했다. 현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유식무경: 유식 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 『불교철학과 현대 윤리의 만남』, 『대승기신론 강해』, 『심층마음의 연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 등이 있다.